[KNS뉴스통신=송영배 기자]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개인의 고뇌와 파괴를 그리는 소설이 아닙니다.
주인공 영혜는 폭력과 억압 속에서 '고기'를 거부하며 생명 윤리에 대한 고뇌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녀의 거부는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영혼의 해방과 생명에 대한 존중의 외침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독자는 영혜라는 인물의 삶과 죽음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오해하고 무지로 인해 외면한 인류의 모습과 그로 인해 다가오는 심판의 경고를 깊이 들여다보게 합니다.
독자들에게 인간의 본질적인 갈등을 질문합니다.
영혜의 선택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 1장 29절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씨 맺는 채소와 열매를 주신 것은 생명을 보존하고 다른 생명을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는 삶을 지향하라는 명령이 아닐까요? 그러나 영혜가 선택한 생명의 방식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를 정신병자로 몰아넣습니다. 이는 인간이 가진 자유 의지와 생명의 신성함을 외면한 세상의 폭력성을 드러냅니다.
결국 영혜의 파괴된 삶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영혜를 둘러싼 가족과 사회의 행위는 생명을 경시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인간의 타락을 보여줍니다. 반면, 영혜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본질에 가까이 가려는 인간의 발버둥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영혜의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고통을 넘어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여러 윤리적, 영적 문제를 성경적 관점에서 되돌아보게 합니다. 소설 속에서 영혜는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외면당하고, 결국 정신병원에 갇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그녀가 겪고 있는 영적 혼란과 갈망이 외면받고, 정신과 의사는 단지 약물과 주사로 그녀를 무력하게 만들어 돈을 벌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이 자주 겪는 문제와 유사합니다. 많은 이들이 음욕과 욕망에 사로잡히고, 금전적 유혹을 따르며 선악을 가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돈을 쫓는 행위가 결국 도덕적 기준을 무너뜨리고, 정신적, 영적 건강을 해치는 악순환에 빠지게 만듭니다.
영혜를 돌봐야 할 의사는 그녀의 내면의 고통을 영적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단지 물리적 증상에만 집중하며 치료합니다. 이는 영혜의 심리적 안정과 회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영혜의 치료는 동물처럼 다루는 방식에 가까워 그녀의 본질적인 문제인 영적인 고통을 해결하는 데 실패하고, 그 대신 그녀의 존재를 억압하며 병원에만 갇히게 됩니다.
채식주의자는 하나님의 생명 윤리가 개인의 자유와 창조성을 존중하며, 생명에 대한 깊은 경외심에서 출발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남긴 충격은 단순한 비극적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잃어버린 생명과 자유를 향한 묵직한 메시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소설은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정신적, 영적 고통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단순한 외적인 치료로는 진정한 회복이 불가능하며, 우리 내면의 갈망과 상처를 치유하려면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인 돌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영혜는 꿈속에서 본 끔찍한 폭력과 피의 이미지를 계기로 육식을 거부합니다. 그녀의 결단은 단순히 채식을 향한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 사회에 대한 거부이자, 생명과 존재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향한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영혜의 결정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억압하며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하나님의 생명 윤리는 타인의 생명뿐 아니라 우리의 자유와 창조적 본질을 존중하는 데 그 핵심이 있습니다. 영혜가 꿈꾼 자유는 창조적 삶의 구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녀가 나무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연결, 그리고 생태계와 하나 되는 평화로운 존재 상태를 향한 갈망으로 읽힙니다. 영혜는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평화의 생명체'로 존재하기를 원했지만 세상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억압으로 몰아세웠습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무시하며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문 앞에 서서 두드리시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심과 이기심에 갇혀 그 문을 열지 않습니다(요한계시록 3:20). 하나님의 말씀은 평화와 사랑, 생명의 윤리를 가르치지만 인간은 탐욕과 갈등 속에서 이를 외면하고 서로를 파괴합니다. 영혜를 정신병원으로 몰아넣고 그녀의 내적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가족의 태도는, 자신의 욕망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를 희생시키는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상징합니다.
영혜의 삶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생명과 자유를 존중하지 않을 때,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게 됩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벌어지는 전쟁, 환경 파괴, 사회적 갈등은 모두 이기심과 욕망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이는 마치 영혜의 가족이 자신의 기준으로 그녀를 억압하고 멸시하면서 그녀의 삶을 망가뜨리는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멀리 있지 않으며,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분의 공의 아래 심판받게 됩니다. 채식주의자는 단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할 때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경고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윤리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이기심 속에 갇혀 멸망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영혜의 비극은 우리 모두가 깨닫고 회개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문 앞에 서 계십니다. 그분의 손을 잡고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 길임을 이 작품은 묵직하게 일깨워 줍니다.
송영배 기자 dandory2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