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S뉴스통신=오성용 기자] 70~80년대 당구장은 소위 좀 논다는 사내들의 집합소였다. 입에 담배를 문 난닝구(러닝) 차림의 남성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았고, 배달로 시켜먹는 자장면은 당구장에서 먹어야 할 최고의 맛으로 꼽혔다. 당구장의 분위기는 9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며 서서히 변화를 맞이했다. 포켓볼 문화가 들어오며 여성들의 당구장 출입이 증가했고, 실내 금연 운동이 확대되며 당구장에서 담배를 문 남성들의 수도 점점 줄어갔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당구장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건전한 공간이자 두뇌 스포츠로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이천시 당구를 보면 전국의 당구 문화를 알 수 있다’는 이천시 당구협회 이민규 회장을 만났다. 당구 문화의 변혁이 가장 늦는다는 이천시가 이만큼 변했으면 전국적으로 당구의 새 변혁은 이미 완성됐다는 소리다. 이 회장은 “본디 당구는 순종 황제 때 왕실에서 시작된 스포츠이고, 서양에서는 신사들이 당구를 즐겨 매너있는 운동으로 그 역사를 함께 해 왔다”며 “국내에서도 최근에는 이러한 문화가 자리잡혀 두뇌와 매너를 겸비한 스포츠로 제고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도의 두뇌 회전이 필요한 스포츠
당구대 위에 공 4개, 우리가 4구라고 표현하며 치는 당구의 정식 명칭은 캐롬 당구다. 구멍이 없는 당구대 위에서 수구(내공)로 붉은 공 두 개를 차례로 맞춰야 한다. 상대편 수구를 맞추거나 붉은 공을 하나만 맞추면 감점이 된다. 마지막에는 3쿠션으로 경기를 마무리해야 한다. 캐롬에는 3구 경기도 있다. 수구로 나머지 두 개의 공을 맞히는 게임인데, 한 개의 공을 맞힌 후 쿠션을 맞고 나와서 다른 공을 맞히면 좋은 점수를 낼 수 있다. 아시안 게임에서 채택된 종목은 3구 경기다. 3구든 4구든 당구대 위에서 두 개의 공을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이 흘러가는 각도도 생각해야 하고 물리적인 움직임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단순하게 때리는 게 아니다 보니 당구를 고도의 두뇌 회전이 필요한 스포츠라고 부르는 것이다.
진정한 당구인의 품위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당구 역시도 상대방(팀)을 존중하며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민규 회장은 이것을 ‘인성’과 ‘품위’ 라고 했다. “개인플레이를 하다 보면 심리전이 펼쳐지기도 하는데, 진정한 당구인이라면 상대를 배려하는 경기 매너와 스포츠맨십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올바른 문화는 당구를 사랑하고 아끼는 우리 동호인들이 먼저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우리가 먼저 품위를 잃지 않고 플레이에 임하는 것,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만들어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육의 부재는 당구의 위기
당구 신예로 불리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행직, 김준태, 조명우. 이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매탄고등학교 출신들로 어릴 적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온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매탄고등학교에서 당구부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더이상 지원하는 학생들이 없어서다. 지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부터 당구가 정식 종목에서 제외되며 당구 선수를 하겠다는 학생들이 없다. 오는 2030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부터 당구가 다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는데, 7년 후 출전할 선수들이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민규 회장은 “아마추어 선수층 역시 4~50대 이상에서만 인기를 끌고 있고, 젊은 2~30세대들 사이에선 관심을 못 받고 있다.”며 “선수층이 사라지면, 이러한 현상은 더 빠르게 나타날 수 있어 위기감이 크다.”고 말했다.
이러한 위기감은 경영난을 겪고 있는 당구장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코로나19의 여파가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크다. 이민규 회장은 “당구장은 시설이 한정적이어서 손님이 많이 온다고 다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 돈을 벌려면 운영시간을 늘려야 하는데, 최근에는 늦은 시간까지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당구장 운영이 어렵다.”며 사업자들을 대변했다.
“4~50대 이상의 세대들이 늦은 시간 삼삼오오 모여 당구장을 찾을 리가 없고, 젊은이들이 와야 하는데, 당구에 재미와 관심이 이전 세대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또 “당구 하면 떠오르는 옛날 이미지로 부모들이 당구장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게임에 빠진 젊은 세대들의 문화 역시 한몫을 하고 있다.”며 “이러한 현상이 유지된다면 당구가 사장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당구의 저변 확대와 활성화를 위해 이 회장은 지난 6월 1일 부발중학교를 비롯해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도 중학생 20여명을 지도했다. 그는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이 늘어나야 당구에 대한 관심과 인식 제고도 올라갈 것이다.”며 “현재 농협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강습도 예정되어 있고, 그 외 주부교실, 노인교실 등으로 확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밝혔다.
“당구는 두뇌와 매너 스포츠다”
“당구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함께 당구의 긍정적인 부분이 더 드러나야 한다.” 이민규 회장은 우리나라와 달리 세계적으로 당구는 두뇌와 매너로 승부하는 게임이라는 것을 강조했고 2030년 도하 아시안 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만큼 당구가 잘 계승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당구를 아끼는 동호인들이 조금 더 애써주길 바랐다. 이천시 당구연맹에 등록된 회원 수는 300여 명이다.
아마추어 당구 대회로 대한당구협회가 주관하는 ‘전국당구대회’와 이천시 당구연맹이 주관하는 ‘이천시 당구연맹 회장 배’가 해마다 열린다. 종목은 캐롬부터 포켓볼까지 다양하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용품과 장비를 갖추는 데서부터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 당구는 비교적 그런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또 시·군 단위의 스폰서가 없는 아마추어 대회 조차도 우승 상금이 2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규모가 제법 큰 편이고 프로 당구의 경우 우승 상금이 경기별로 1억에서 6억원 선으로 점차 증액되고 있다.
당구는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며 도전 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생활 스포츠다. 이민규 회장의 바램대로 올바른 당구 문화의 정착과 인식 제고로 당구의 밝은 미래가 펼쳐지길 염원한다.
오성용 기자 v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