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S뉴스통신= 김명민 기자]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찾는 대장정'은 본지와 시사코리아, JNB전남방송, 시사코리아뉴스, +코리아타임즈 등 5개 언론사의 후원으로 1차 38명의 역사 탐방단을 구성하고 이번 역사여행을 주관한 한문화사(韓文化史.Hanmunhwasa. Corean Culture History Excursions)의 시베리아 탐방 기치이다.
그동안 강단사학에서는 아사달의 징표로 비파형동검과 무엽산을 거론하고 있는 실정이었으나, 그것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를 못했다. 그러나 아사달평원의 더 넓은 벌판 형상과 신성한 태양의 산으로 일컫는 알탄 문다르가봉의 악산을 보고 있자면, 비파형동검은 아사달평원의 형상지도였으며 무엽산은 알탄 문다르가봉(3152m)을 지칭한 것임을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12환국은 유목민으로서 가장 중요시 여겼던 것은 북두칠성의 위치였다. 이 북두칠성의 위치를 정확하게 판독한 후 각 12개 환국 유목민들의 이동 시기를 정확하게 판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이 춘분부터 동지까지의 절기를 구분할 줄 아는 단군 삼족오 지도자가 없었다면 모두 얼어 죽었거나 기근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에 고대 문명에서는 천문지식이 가장 탁월한 지혜였으며 오직 신의 혈통 십자가 표기가 상징인 케레이 부족과 그들의 지도자 단군만이 그와 같은 천문지식으로 나머지 11개 환국의 질서를 유지시켰던 것으로 이해하고 알아서 가더라도 이번 시베리아 탐방 목적의 절반 이상은 달성한 셈 인 것으로 자체 판단하고 ‘한문화사 탐방단’은 다음 마지막 여정지인 이르쿠츠크로 향했다.
이르쿠츠크에는 바티칸 카톨릭과 러시아 정교(본래는 그리스정교)회가 있다.
이르쿠츠크의 모든 성당에는 각자 다른 수많은 비밀들이 간직되고 있으나, 바티칸 카톨릭의 십자가 유례와 러시아 정교(본래는 그리스정교)가 분할된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면서도 그 실체적 사연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카톨릭 십자가의 유례는 4세기 초 로마와 유럽의 타락한 현실을 수수방관 할 수 없었던 백악산 아사달의 지도자들이 12환국 다국적군대로 결성하여 발진한 훈족들에 의해, 로마와 유럽을 평정한 이후 불거진 사건으로 일컬어진다.
훈족의 12환국 다국적 군대는 그 부족의 중심에 언제나 신의 전령군단인 케레이 부족의 단군십자가가 지휘 통솔하고 있었다. 그들의 군대는 언제나 가장 높은 건물인 사원이나 성당을 목표로 문명교화의 근원지로 삼아 미개한 유럽인들을 교화할 당시 단군 십자가로 통칭되는 케레이 부족의 앞선 문화와 선진 문명에 동화된 지역 주민들과 성직자들 중 특히 서기 431년에 중동 지역에서 현재 카톨릭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게오르기(한국어로는 ‘성 조지’)와 케레이(훈족) 부족 간에 단군 십자가기와 카톨릭을 서로 인정하자는 협약을 맺게 된다. (케레이 군단은 모든 종교를 차별 없이 수용하는 전통이 있었고 이 전통은 징기스칸의 12.-15세기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그 당시 유럽에서 제일 큰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에 주둔한 그리스 카톨릭 분파는 이 이단의 상징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결국 성 게오르기는 십자가를 받아들인 죄로 로마 교황청에 의해 참살 당하게 되고 이를 알게 된 훈족 케레이의 지도자들은 더 큰 세력을 결집하여 이때부터 로마와 유럽을 초토화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위기를 맞은 로마 교황청은 결국 사제들의 모든 복장에 십자가를 부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모든 성당에 큰 까마귀 십자가를 그려놓고 제일 높은 곳에는 아주 멀리서도 확인 가능한 대형 십자가를 달도록 했다. 그것의 의미는 무조건적인 항복이며 나아가서는 우리와 같은 가족이니 살려달라는 하소연이었던 것이다.
당시 로마의 원로원과 유럽 봉건체제의 노예 문화는 소농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주식과 부를 착취하는 악습의 전형이었고 남존여비의 축첩제도는 온갖 사치와 성 퇴폐의 근원이었다.
그 퇴폐하고 타락한 문명을 케레이 삼족오 십자가 군단이 일벌백계로 다스리고 현재의 유럽문명을 건설했는데 아무도 이런 케레이 단군십자가의 위대함에 대하여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하지도 않고 있다.
케레이 부족의 단군 십자가를 앞세운 유럽 평정은 이로써 끝나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까마귀 부족의 인사하던 관습은 현재 카톨릭의 성호 긋는 인사법으로 탈바꿈 되어 오늘날까지 일반인들은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카톨릭의 상징들인 부활절, 크리스마스, 할로윈데이 등 모두 그곳 사얀산맥의 백악산 아사달에 살던 케레이 민족과 11개 다른 유목민족들의 풍습이었으며 심지어는 카톨릭의 십자가도 앞서 말하였듯이 서기 431년에 카톨릭의 수호성인인 성 게오르기(성 조지)가 백악산 아사달을 근거로 하는 케레이 부족으로부터 차용해 간 것이다. (이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도서관들 지하에 보관된 고대문서에 나오는 진실들이다.)
그러던 중 어느 시점에 십자가를 거부한 그리스 정교의 현 러시아 정교가 생겨나고, 그때부터 러시아 정교는 십자가 가로축 밑에 사선을 그어서 바티칸 카톨릭과 뜻을 달리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세계사는 다시 씌워져야 한다.
이번 시베리아 탐방으로 바이칼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샤얀 산맥과 백악산 아사달에서 세계국가 민족의 근원지일 뿐만이 아니라 인류문명 발상지와 해후할 수 있었으며 케레이 부족에서 ‘KOREA’의 어원을 해독할 수 있었다. 또한 백악산 아사달은 세계 피라미드 문명의 시원이라는 것과 위대한 샤먼의 시대를 추적 탐구할 수 있었다.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찾는 대장정에서 얻은 교훈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황당무계한 코미디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교육이랍시고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이 통탄할 현실을 우리 케레인들이 깨 닳고 이제는 현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콜럼버스가 아묵리가 대륙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은 당시 유럽에서 제일 큰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보다 두 세배 더 크고 위대한 문명을 이룬 아즈텍 문명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문명은 신과 소통하면서 자연과 평화를 구가하며 타 문명과 타 민족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전통이 있어서 해양을 건너 온 이방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으나, 북아메리카 원주민 3,000만 명 그 이상을 학살하고 더러운 매독이나 온갖 악성 전염병으로 초토화 시켜서 총과 화약으로 잔인하게 말살시킨 후 그들은 그 위대한 문명을 인신공양 하는 미개 원시부족쯤으로 치부하면서 자신들의 천인공로 할 만행을 정당화 시켰었음을.....
[이상 본문의 내용은 “러시아의 남 시베리아에서 백악산 아사달과 그 지역의 고대 역사들을 세계 최초로 발견한 시타 알렉산더(한국명 김성진)”가 러시아 현지의 TV방송국과 언론을 통해 발표한 내용들과 현지 러시아 국립 대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내용들을 인용, 참고했다.]
김명민 기자 wooin70@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