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S뉴스통신=최도범 기자] 지면을 데우던 한창의 무더위가 고비를 넘기며 조석으로 시원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즈음, 도심 속 영화 촬영지가 마지막 휴가철 도시민의 볼거리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
꽉 막힌 도로와 인파로 뒤덮인 휴가지에서의 기억을 접고 원도심의 한가로운 골목길을 돌며 도심 속 영화·드라마 촬영지를 찾아 볼거리를 즐기는 여유는 아이들의 또 다른 추억이 될 것이다.
제물포시장, 열우물벽화마을, 송월시장, 전도관·우각로문화마을 등이 인천의 대표적인 영화 야외 촬영지로 길을 걷다 보면 주변의 건물과 풍경이 언제 어디선가 이미 스쳤던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바로 영화나 드라마에 나왔던 배경들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친근하고 아름다운 영상의 촬영지를 도심 곳곳에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영화 ‘신세계’, 거대한 범죄 조직에 얽힌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누아르 영화로 경찰에서 조직의 3인자로 성장한 이정재가 그의 조직과 접선하며 혼돈에 빠지는 장면를 인천 제물포시장에서 촬영했다.1972년 문을 연 제물포시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활기가 넘쳤다. 수봉산 자락에 주택가와 학교가 몰려 있어 늘 사람들로 들끓었으나, 지금은 모두 빠져나고 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제물포 시장이 세상의 관심을 받은 건 여고생 써니파와 소녀시대파가 ‘욕 배틀’을 하며 관객에게 웃음을 안긴 장소로 지난 2011년 작 ‘써니’의 촬영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곳에선 이후 ‘신세계’, 드라마 ‘황금의 제국’,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 9’의 오프닝도 이곳에서 촬영했으며 이번 달에 영화 ‘아수라’가 촬영을 예약하고 있다.
또, ‘별에서 온 그대’로 한류를 이끄는 배우 ‘김수현’이 북한에서 남파된 최정예 간첩으로 분, 달동네 바보 백수로 위장해 생활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주 무대는 부평구 십정동 열우물벽화마을이다.
이 마을은 1960년대 말 동구 만석동과 주안, 멀리 서울에서부터 오갈 데 없던 사람들이 밀려와 터를 이룬 산동네로 이곳에서 ‘은밀하게 위대하게’, ‘나쁜 녀석들’, ‘가면’, ‘악의 연대기’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 작품을 촬영한 곳으로 유명하다.
마을 안 골목길엔 스크린과 TV화면에서 보던 낯익은 풍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김수현이 머무르던 석이슈퍼는 지금 사라져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 장소 앞에는 드라마 ‘가면’의 촬영 세트장이 생겨나 그나마 아쉬움을 달랜다.
아울러, 지난 2002년 젊은 예술가들로부터 시작된 ‘열우물길 프로젝트’를 통해 마을 담벼락과 계단을 수놓은 꽃, 나비, 무지개를 비롯한 갖가지 소박한 풍경의 그림들이 또 다른 볼거리로 방문객을 기다린다.
‘중구 송월동’ 이 곳은 요즘 동화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그곳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간이 멈춘 듯 스산한 기운을 잔뜩 안고 서 있는 육중한 건물이 있다. 송월시장이다.송월시장은 영화 ‘숨바꼭질’의 촬영지다. 영화는 한 남자가 실종된 형이 살던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난 1937년 생긴 송월시장은 가축을 사고팔아 흔히 ‘돼지 장터’라고 불리며 번성했으나, 만석동으로 넘어가는 육교가 생기고 철로 변에 담이 높이 쳐지면서 급격히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지금은 재난위험시설(D급)로 지정되어 대부분 텅 비어 있는 상태로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으나 소유주별로 갖고 있는 지분은 보상받아 이전하기 어려운 여건을 갖고 있어 아직 개발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송월시장에선 지난 2013년 개봉해 흥행을 거둔 영화 ‘변호인’에 나왔던 돼지국밥집이 송월시장에서 촬영했으며, 가수 싸이의 ‘행오버’ 뮤직비디오 그리고 올해 개봉한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지하철 보관함에 버려진 ‘일영’이와 차이나타운을 지배하는 김혜수 일행이 머무는 곳으로 나온다.
이밖에도 한때는 종교시설로 사용했던 우각로문화마을의 정도관이 그 주인공이다.남구 숭의동 109번지 언덕의 전도관 안에는 화제를 모으며 방영 중인 김태희 주연의 SBS 드라마 ‘용팔이의 세트장이 있다.
또 2층에는 뱀파이어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드라마 ‘블러드’의 세트장이 남아있으며 노년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다룬 이순재·윤소정 주연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가 인근에서 촬영했다.
이외에도 영화 ‘신의 한수’, ‘맨홀’,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드라마 ‘오만과 편견’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개발의 시강 속에 소외되며 쇠락의 정지된 시간을 이어가는 원도심은 이렇게 우리의 주변에 남아 영화와 드라마의 기억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희망과 기쁨의 웃음소리는 도시 속에서 경쟁 속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에 비해 작지 않다 할 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이면은 우리 아이들에게 경쟁의 현실을 떠나 잠시나마 옛정취를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의 볼거리를 통해 새로운 정서적 안정을 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최도범 기자 h21y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