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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사상계가 아니었다면?…'장준하 선생 추모식 맨발 걷기'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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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사상계가 아니었다면?…'장준하 선생 추모식 맨발 걷기'를 다녀와서
  • 송영배 기자
  • 승인 2024.10.19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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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근대화와 민주화의 나침판

[KNS뉴스통신=송영배 기자] 사상계는 의식있는 청년들이 이 책을 통하여 자신의 사고를 드높이는 창구였다. 지식인과 학생층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한국 문학과도 깊은 인연을 자랑했던 원인은 사상계를 통하여 많은 문인들이 사상계에 의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지식인과 학생들은 사상계를 통해서 많은 지식을 습득하였고, 한국 문학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단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잡지 제목이 준 사상이라는 낱말로 많은 사랑과 수난을 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에 어떤 정치 변수나 이슈가 생기면 사상계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신문 이상의 기능으로 독자들의 궁금한 부분에 사상계가 표적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름 따라 제 구실을 한다고 하여 부모님들과 조상들은 집 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 짓는 일이 큰일었다.

이름으로 길흉화복을 엿볼수 있으며, 운명을 좌우하는 신앙심이 내재 된 민족이 지구촌에 얼마나 있을까?

그 만큼 이름이 주는 역할의 비중은 매우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사상계로 사랑도 많이 받았고, 수난도 많이 받았다. 사상계를 통하여 서구에 한국사회를 알리는 창구가 되었고 홍익인간의 사상을 이념화 도식화 하였던 인물 장준하! 

1970년대에는 반 유신 운동에 뛰어들어 민주화 운동에 불씨가 되기도 했었다

성장하는 청년들에게 애국심을 체험으로 가르쳤고 국가의 운명과 나아갈 길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최고의 존재 가치성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로 인해서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였고 갈팡질팡 어지럽고 흩어진 방향을 나침판처럼 사상계가 잡아 주었다. 사상계 잡지에서 역사의 흐름을 읽었고, 학생, 지식인들은 시류를 읽는 선장이 되어 키를 잡았던 것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일깨워 주었고, 사회에서 본받을 부분을 깨워주었다. 부모님 대신으로 이 잡지를 읽고 인성을 키웠고, 시시각각 돌변하는 현상 사회에 대처할 수 있는 스승으로 지혜를 주었다. 그는 성장하는 청년들의 의식의 전환이 자랄 수 있도록 양분을 주어 깨닫게 해주었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무엇을 할지를 일깨워 주었다.

그는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힘써왔고 민족혼을 일깨워 주었던 지식인이며, 선견자, 선구자, 행동자로 사상계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도록 했던 사회의 표상이었다.

장준하는 대한민국의 해방 이후에도 군사정권과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주도한 저항과 비판적 목소리는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망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으며, 여러 사람들에 의해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고 의심받고 있으며 권력이 두려워하는 스승과 같은 존재로 그의 존재감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2024년 10월 17일,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민족지도자 장준하 등불길 여의 맨발 걷기 대회’가 시작되었다. 이 행사는 장준하의 정신과 헌신을 기리기 위한 상징적인 행사로, 그의 고된 6000리 여정을 추모하며 맨발로 사유하며 유영하는 존재감없이 행렬은 묵직히 진행되었다.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장준하 선생이 겪었던 고난을 떠올리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갔다. 장준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계의 창간인으로서 한국의 민주화와 자유를 위해 헌신한 인물 그가 견더낸 아픔과 희생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며, 그의 정신은 잔불같이 살아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그가 겪은 고난을 상기하며, 오늘날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자아를 잃은 사회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다.

정치적, 사회적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잃은 지도자들과 국민들에게, 장준하 선생의 선택과 집중의 철학이 다시금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인물이었으며, 이러한 정신이 오늘날에도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대회를 통해 공유되었다.

 

특히, 장준하가 강조했던 자유민주주의 정신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진정한 자유와 책임을 강조한 깊은 철학적 원칙이었다.

참석자들은 이 정신을 되새기며, 현재의 정치판에서 그가 꿈꾸던 올바른 자유와 정의가 다시 뿌리내릴수 있기를 염원했다.

이 걷기 대회는 단순한 추모 행사를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민주화, 인권, 평화의 메시지를 되새기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상계는 한국 사회가 혼란과 격변 속에서 방향을 모색하던 시기에 등장했다. 전쟁 후 복구 과정에서 사회적, 정치적 불안정이 팽배했고, 그 속에서 한국 지성인들은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했다. 사상계는 그러한 시기에 그들의 생각과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매체가 되었고, 이를 통해 지성인들은 자신의 신념과 비전을 공유했다.

사상계가 출간한 다양한 글들은 사회 정의, 인권, 정치 개혁 등 당대의 주요 이슈들을 심도 있게 다뤘다.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이 잡지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지혜의 공장이었기때문이다. 

사상계는 단순한 잡지 이상이었다. 독자들은 이 잡지를 읽으며 자신의 존재감과 세계관을 확립하고 사회적 책임감을 느꼈다. 많은 독자들은 사상계를 단순히 소비하는 매체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잡지를 구독하고 그 속에 담긴 사상을 깊이 새기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 했다.

 

"사상계를 가슴에 품고" 읽는다는 표현은 단순한 독서를 넘어서 그 잡지에 담긴 철학과 가치관을 마음에 새기고, 그 사상이 실제 삶에서 구현되기를 바라는 독자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독자들 중 일부는 사상계를 통해 비판적 사고를 배웠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사상계는 당시 한국 사회에서 단순한 지성인 잡지를 넘어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상계를 통해 인식의 전환을 경험했고, 이 잡지는 사회적 담론의 장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 사상계의 영향력은 학생, 지성인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그 잡지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사상계는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그 잡지를 읽었던 이들은 사상계를 통해 배운 가치관을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가고 있다.

 

10월 17일 11시 반 여의도에서 장준하 선생 추모식 맨발 걷기 참가자가 모인 곳은 공원 한 복판에 전시용으로 자리를 차지한 비행기 앞이 약속 장소였다.

사람들은 그 비행기가 왜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모른다. 분명히 비행기는 역사적 고증물 때문이기에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까닭이 있음을 짐작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태평양전쟁 전쟁 종식을 위해 미군은 일본에 원자 폭탄을 투하 1차적으로 혼쭐이 난 일본은 항복할 생각이 없었고 2차 경고를 무시했다. 결국 두 번째 원자폭탄 공격으로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일본 왕은 1945년 8월 15일 정오 조건 없는 항복을 하였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1945년 8월 18.일 일본군이 점령 중인 여의도 비행장에 C-47 수송기가 착륙하였다. 이 수송기에서 광복군 소속 이범석, 노능서, 장준하, 김준엽 네 사람과 한국계 미국인 함용준, 정운수, 서상복 7명의 미국 전략첩보대(OSS)특공 광복군은 수류탄 두 발, 최신 기관총, 허리에는 권총까지 착용한 중무장 상태로 여의도 공항에 착륙, 일본군 전투기 50여대, 탱크 2대, 박격포로 무장한 일본군들이 새까맣게 진을 친 전쟁터 한복판에 서로가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던 전쟁 현장이었다.

그들이 온 목적은 미국 포로 상황과 안전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전을 불사한다는 각오로 C-47 수송기를 타고 날아온 것이었다.

 

일본은 사흘 전 무조건 항복을 한 상태였지만 무장을 풀지 않았고 미군 포로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모르는 매우 긴장된 상태로 대치중이었다.

그런데 그 날밤 일본군 장교 두 명이 광복군을 찾아와 무릎을 꿇고 맥주와 일본 술을 광복군에게 따라줘 항복의 뜻을 전하였다.

일본군과 전투는 없었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이 적진에 진입 조국을 해방시키는데 일조를 했던 길이 기억될 의미가 담긴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들이 타고 온 비행기 C-47 수송기가 그날의 역사의 산유물, 역사의 증거물로 지금 비와 눈, 바람, 태풍, 번개, 서리를 맞으며 증험자의 입장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8명의 맨발 걷기 회원들이 십자가를 진 예수같이 자유를 위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청년들의 장래를 위해 헌신한 장준하 선생을 회상하면서 고난의 길을 맨발로 답습하였다.

장준하는 우리곁으로 다가와 무지를 일깨워 주었고 청년의 희망, 청년들이 안고있는 꿈의 완성을 위해 장준하는 전쟁중에도 자유민주주의 우월성 고취와 꿈 희망, 용기가 무엇인지를 알도록 역량을 고취시켰다.  무지로 덮어진 이 땅에 코리아 완성을 위해 지식의 힘을 불어주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대한민국 최초의 종교적 신념을 뛰어넘은 호위 무사가 되었다.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

”후손에게 다시는 못난 길을 걷게 하지 말자“는 신념을 가슴에 품고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일본군에 자원 입대, 입대 6개월만에 일본군에서 탈출 맨발로 6천리 길을 걸었고 죽음의 여정은 임시정부 도착으로 끝이났다.

안락을 멀리한 장준하는 전략첩보대(OSS)특공 광복군으로 변신 그때부터 지독한 민족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독자들 중 일부는 사상계를 통해 비판적 사고를 배웠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장준하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 언론인으로, 특히 "사상계"라는 잡지를 통해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정치적 자유를 위해 노력했다.

필자는 그의 정신을 바탕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병폐에 대한 생각으로

장준하의 정신을 꼽아본다. 현재 한국사회에 정신적 지도자와 사명감이 부족함으로 정치와 교육 부문이 어지럽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을 피력해보고자 한다.

정치 부문:

-. 민주주의 가치 강화: 현재 한국 정치가 여전히 대립과 갈등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면, 장준하 정신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건설적인 비판과 협력을 통해 민주적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정치적 투명성: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권력을 사유화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부패와 권력 남용에 대한 경각심을 높      이는 도구.

교육 부문:

-.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 학생들은 주체적 사고를 키우고 스스로 질문하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현재 교육 시스템은 암기 위주의 학습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성을 격려하는 교육을 지향해야함.

-. 사회적 책임의식 교육: 교육은 단순히 개인의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에 기여할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학생들이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 따라서, 오늘날 정치와 교육의 성숙을 위해 민주적 가치, 비판적 사고, 사회적 책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방향 전환이 무엇보다 사회전반적으로시급하며 필요하다.

 

 

 

 

 

송영배 기자 dandory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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