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9월, 서울에서는 제24회 하계올림픽이 성대하게 열렸다. 지금부터 꼭 30년 전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그때 30대에 접어든 나는 영자신문인 코리아타임스(1998년 9월 18일자)에 ‘Viva Korea! Viva Olympics!(한국 만세! 올림픽 만세!)'라는 제목으로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기고문을 썼던 적이 있다. 그 영어 칼럼을 후에 한글 대역으로 펴낸 당시 에세이집에서 요약 인용해 본다.
‘......자네는 미국에 오래 살고 있어 한국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겠지. 그래서 한국의 정치상황과 결부해 서울올림픽에 대해 ’한국이 인류의 스포츠 축제를 잘 치러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많이 했었지. 한국은 문명사회의 가장 훌륭한 제도라고 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일련의 시민 항쟁의 상황과 극적인 변화를 겪어왔어.
나라가 온통 고함과 시위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노사분규는 산업을 어렵게 만들고 있네. 정치판은 전 대통령의 친인척이 저지른 부조리를 둘러싸고 팽팽한 설전을 벌이고 있네. 또한 분단 상황에서 올림픽 축제를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도발을 걱정하고 올림픽 참가자들의 안전을 염려했지. 뿐만 아니라 자네는 올림픽 주최국으로서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한국의 경제적 능력이 있을까도 신경 썼었지.
하지만 그런 여건속에서도 자네의 우려와는 달리 올림픽 사상 최고 기록으로 무려 161개국이 참가한데다 우방국들과 심지어 통상 적대국이던 나라에서도 협력을 해주어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축제가 되었다네. 더 나아가 지금까지 금기시 되었던 공산권인 소련과 중국의 예술가들이 올림픽을 기념해 최초로 한국을 찾아 멋진 공연들을 펼쳐보였다네. 한 마디로 세계인들의 우정과 화합으로 동서가 하나로 뭉쳐 이념의 장벽을 허물어 버렸네.
국제사회는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이 채무국가의 위치에서 벗어나 신흥공업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어. 이런 성과를 낸 것은 정치인들이나 학생들이 이 뜻깊은 올림픽 축제를 위해 반목과 분열 행동을 자제하기로 한 덕분일걸세. 아마 정치권과 시국을 둘러싸고 젊은 세대들이 올림픽 기간 동안 비생산적인 언쟁과 투쟁을 그만두자고 결정한 것은 처음일 것이네. 이제 서울올림픽 경기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받돋움 할 것이 분명하구료...‘
그 후 30년의 세월이 흘러 지난 9일 제23회 평창동계올림픽이 ‘하나 된 열정’이라는 구호아래 17일간의 일정으로 화려하게 개막됐다. 이번 올림픽에는 30년 전의 서울올림픽처럼 역사상 가장 많은 92개국의 2,90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기록을 세웠다.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마다 참가 기록을 세운 셈이다.
이번에는 첨단기술과 문화 예술을 결합시킨 개막식에서 ICT 강국의 이미지로 지구촌을 감동시켰다. 심지어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한국에 금메달을 줘라(Give South Korea a gold medal)'라는 제하의 칼럼은 한국이 가전, 바이오테크, 로보틱스로 이어지는 성장을 통해 탈공업 경제로 진입했다고 평했다. 서울 올림픽을 통해 신흥공업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객관적 평가를 받은 후 30년이 지나 이제 한국은 4차산업혁명 시대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솟은 것이다.
이번 평창올림픽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북한의 참가와 남북 단일팀 결성과 이와 관련된 남북 문화예술 교류였다. 북한의 핵 개발 고도화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대치 국면에서 분단 한국의 현실을 올림픽을 통해 하나로 이어주는 역사적인 평화올림픽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세계적인 관심을 높인 것이다.
서울올림픽 당시는 분단 상황에 적성국가였던 소련과 중국의 예술단이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이번에는 분단의 아픔은 여전히 가시지 않은 채 오히려 더욱 첨예하게 남북과 주변 강국들이 군사 외교적으로 대립된 긴장 상황에서 북한 선수단, 예술단, 응원단이 전격 참가해 훈풍을 불어 넣어 주었다.
특히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이 방남해 실세 특사가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접견하며 방북 초청과 함께 상호 소통의 기회를 가졌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이것을 계기로 ‘여건이 갖춰져’ 남북 간의 실질적인 교류의 물꼬가 트일지가 국내외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치적으로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권의 이념 논쟁이나 대립은 여전하다. 하지만 서울올림픽 당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선량한 국민들과 공권력이 무력적으로 격돌하던 시대다. 이제 한국국민의 의식은 시국의 현안을 풀어가는 데 있어 세계가 찬탄한 지난 겨울 촛불시위에서 보여주듯 질서를 지키며 평화스런 방법으로 해법을 찾아가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경제적으로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에 지나지 않았던 1988년과는 달리 한국은 현재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진입하며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세계를 선도해 나가고 있는 위치에 다다라 있다. 올해는 한국이 이른바 ‘5030클럽국가’ 반열에 든다고 한다. 5030국가란 인구가 5,000만 명이 넘고 개인 국민소득(GNI)이 3만 달러를 넘는 나라를 지칭한다. 현재는 독일,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이 들어가면 세계에 일곱 나라가 된다.
분명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이후 한 세대라 할 수 있는 30년 동안 한국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많은 것이 발전했다. 크게 민주화, 세계화, 문화화 등 그 격변의 시기를 거쳐 오늘 평창올림픽이라는 세계인의 스포츠축제가 다시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더욱 빠른 속도로 변화의 물결을 탈 것이 분명하다. 한국이 5030국가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극심해진 빈부격차의 해소, 기득권 계층의 평등화, 합리 공정 사회 조성, 남북 간 평화 정착, 국민의 행복감 고취 등 진정한 선진사회를 위해 구현해야할 가치가 많다. 분명 지난 30년 동안 민주역량이나 경제성장의 외형적 열매는 맺었지만 그에 걸맞는 내실을 키우지는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평창올림픽은 메달 경쟁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 한 세대의 사회문화체계의 선진화를 위한 변곡점(inflection point)이 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욱이 한국은 세계에서 6번째로 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대회를 모두 개최한 국가가 되었다. 이 영광에 더해 서울올림픽 후 한국이 적성국가였던 중국과 러시아와 수교를 맺게 되었듯이 이번에야말로 남북 해빙의 분위기가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 이인권 논설위원단장은...
중앙일보, 국민일보, 문화일보 문화사업부장과 경기문화재단 수석전문위원과 문예진흥실장을 거쳐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CEO)를 지냈다. ASEM ‘아시아-유럽 젊은 지도자회의(AEYLS)' 한국대표단, 아시아문화예술진흥연맹(FACP) 국제이사 부회장,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부회장,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부회장, 국립중앙극장 운영심의위원, 예원예술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예술경영 리더십> <예술의 공연 매니지먼트> <문화예술 리더를 꿈꿔라> <경쟁의 지혜> <긍정으로 성공하라> 등 14권을 저술했으며 한국공연예술경영인대상, 창조경영인대상, 대한민국 베스트퍼스널브랜드 인증, 2017 자랑스런 한국인 인물대상, 대한민국 인성교육대상, 문화부장관상(5회)을 수상했으며 칼럼니스트, 문화커뮤니케이터, 긍정성공학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인권 논설위원단장 success-ce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