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읍뱃터 바닷가 나들이 소감
[KNS뉴스통신=박세호 기자] 지난 해 말과 올해 초 연이어 인천광역시 영종도를 방문하였다. 가까운 거리지만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알찬 여행이 되었다.
지난 해 인천광역시 시청에서 운영하는 도시경관기록작가단이 발족할 때 이에 응시하였는데, 비록 경력과 실력 면에서 다소 부족하였지만 작가로 선정되었다. 정기적으로 사진을 촬영하여 인천광역시 건축과로 최종 제출하고 었다.
내가 맡은 지역은 인천광역시 영종도의 구읍뱃터이다. 그전에도 수년간 이곳에 오면 사진을 찍기도 하고, 행사에 참가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곳들이다.
지난 해 11월에는 처음부터 야간 촬영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코로나 방역기간 중에 왔을 때 풍경들과 달라도 너무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랐고, 경기가 살아난 듯 하여 내심 크게 기뻤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드문 드문 거리를 매우면서 움직였었다. 규모가 작고 쓸쓸하던 해변가 상가 풍경이 잠깐 둘러보는 외지인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어주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광고판 불빛, 그리고 가게 안에 넘치는 고객들의 모습이 활기차게 비쳐지는 등 거리 풍경과 분위기가 싹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시대가 눈부시게 변모를 거듭하는 21세기 디지털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는 여행과 관광의 풍속도도 이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순식간에 변화를 겪는다는 것을 절실하게 체험한다. 그 당시 11월 초 구읍뱃터의 바뀐 모습을 지세히 보니 눈에 확 띨 정도로 이곳저곳 발전된 사항들이 많이 있었다.
우선 커피숍이나 카페, 그리고 레스토랑이 많이 늘었다. 혹은 같은 업소라 해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보였다.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곳도 사방 좀 늘어난 것 같다. 그전에 없었던 무인 라면 가게도 이채로웠고, 간식 종류와 즐길 수 있는 게임 종류 등 오락실의 분위기도 눈길을 끌었다. 간판도 화려해지고 무리지어 걷는 사람들의 발길도 활기차 보인다.
이 다음 번엔 주말이나 연휴에 사람들이 많이 몰릴 시점을 택하여 인파가 밀리는 장면도 화면에 살려보고 싶다.
국내여행 뿐 아니라 요즈음은 해외여행도 가보면 어디라 할 것 없이 매우 많은 나라들이 이와 겉은 변모의 손길을 거친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나 건설 개발 붐이 일고, 자동차 운행수가 대폭 증가하여 교통 체증이 생기는가 하면 각종 편의시설과 첨단 과학기술의 혜택으로 도시 경관과 거리 풍경 자체가 송두리째 바뀐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이곳 구읍뱃터에 밤 시간인데 불구하고 외국인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해변가를 거닐다가 호주에서 왔다는 20대 여성 배낭객들과 대화를 나눠봤는데, 해변에서 일행이 함께 대화의 시간을 보내다가 맛집과 카페로 이동한다는 간단한 일정이었다. 예약된 숙소를 따라 공항-인천-서울로 이어지는 한국여행에 대한 이들의 기대감은 아주 큰 것 같았고, 그 밑바탕엔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고있는 한류붐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일박을 하고 호텔 예약이 되어있는 다음 행선지로 일찍 떠난다고 한다. 옛날 우리 젊은 시절 국내 각 지역을 무전여행으로 이동하던 때가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영종도내 호텔들은 용도에 따라 최고급에서 차하 등급으로 급수가 나눠지지만, 그 중 실용성을 강조하면서도 시설이 고급 수준인 많은 호텔들이 있어서 환영을 받고 있다. 비싸지 않으면서도 편리하며 외국인들의 안목에서도 수준급인 시설을 갖추고 있고, 버스와 공항 철도가 서울과 수도권 각 지역으로 편리하게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외국인들이 구읍뱃터에서 초저녁 낭만을 구가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블록 건너 호텔에서는 중년의 외국인 커플이 저녁 산책을 나서고 있었다.
이런 밤 시간 뒷 골목을 지나 호젓한 해변 길을 걸어도 안전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질서와 치안이 보장되는 우리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 하고, 최고의 관광자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이 되었다.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둣 한 해가 바뀐 뒤 가진 본 기자의 두 번째의 여행은 연초의 어느 오전 시간에 이뤄졌다.
일출 시간은 지났지만 아직 아침 공기는 차가웠다. 해변의 낭만과 더불어 고요한 포구의 아침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이 지역 전체가 고요한 가운데 바다와 갯벌의 풍경과 더불어 배들의 이동을 관찰할 수 있는 한적한 시간을 제공하였다. 이곳은 사무실이 많지 않고, 출퇴근 인구도 적은 곳이라서 길거리에 사람들의 발길이 한가한 채로 정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계절과 시간의 변동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또 다른 시각 차이도 있다. 주기지를 물색하기 위해 온 사람, 부동산 투자를 목적으로 하거나 개업 목적으로 온 사람들은 관광이나 낚시를 온 사람들과 걸음걸이부터 다르다. 역사 배경을 탐구하며 답사를 온 사람들도 있고,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을 화폭이나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예술가나 문필가도 있다. 사회문제나 환경문제를 다루기 위해 온 깐깐한 저널리스트나 방송인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생각을 동시에 전개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보면 많이 있다. 그래서 백인백색이라고 하지 않는가?
섬 전체적으로 역사의 개관을 들여다본다. 삼국시대에 그 유명한 원효대사가 이곳까지 와서 불사를 창건하기도 하고(용궁사), 고려 시대에는 중국 송나라와 교역을 위한 거점으로 영종도(당시 지명은 자연도)를 이용했는데, 중국에서 오가는 사신을 위한 객관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당대의 풍류객이며 권력가인 흥선대원군이 그곳에 글씨를 써서 남기기도 하는 등 오랜 동안 역사의 발자취가 새겨진 곳이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의 손길이 가장 먼저 뻗어와 이곳을 지키던 수군과 양민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큰 상흔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1875년의 운요호((雲揚號) 사건 때 왜군이 강화도 초지진에서 접전 후, 이곳 영종진에도 들러서 무법한 공격을 감행했다. 구읍뱃터가 그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피격으로 조선 수병 35인이 숨졌고 배는 다시 강화도를 침범하여 1876년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으로 이어졌다.
이곳 영종진 터에는 35인 전몰용사 추모비가 있고, 1년에 한 번 추모행사를 갖는다. 어느 해인가 이 추모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주민들이 제복으로 갈아입고, 옛날 전통방식대로 제사를 올리는 장면을 볼 때 비장감개한 마음이 솟았고, 침략자들에 의해 생명을 잃은 주민들과 수병들을 애도하는 마음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자신의 빛나는 미래와 가족과 친구들을 뒤에 두고 생을 마감하신 고인들의 처지를 생각할 때 분노의 감정이 좀체 그치지를 않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잊혀져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답사여행을 하면서 민족의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애국심을 키우는 좋은 기회로 활동되었으면 한다.
영종도로 진입하는데 있어서 지금은 영종대교와 인천대교를 이용한 육로 교통이 활발하여 드라이브하기에도 좋고, 인천 월미도에서는 정기 카페리선을 이용해 차와 사람들이 구읍뱃터를 왕래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공항철도 노선은 서울과 인천의 시내 전철 노선 망에 직접 연계되어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한다. 영종도내 시내 교통편도 확총되어 가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구읍뱃터 인근은 어디라 할 것 없이 모두 힐링에 도움이 되고 조용한 환경이 마음에 든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무성한 갈대밭, 그리고 거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이번에는 다른 대도시의 아파트촌과 다름이 없는 철옹성 같은 맨션아파트 블록이 연이어 계속되며 더불어 편의시설들과 상가 건물들이 구색을 맞춰 즐비하게 갖춰져 있다.
사진을 찍는 단촐한 출사여행이었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연이어 두 번 다녀온 이번 영종도 나들이를 통해서 참으로 느낀 바가 많았다.
갈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요즈음 관광지들의 풍속도에 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보았던 유익한 체험이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닌 줄 알면서도, 여행을 떠날 때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가슴이 두근거려지던 젊은 날의 그 순수한 낭만을 되살려보고 싶다.
삶의 활력과 기쁨을 만끽하는 좋은 여행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하겠다는 다집도 스스로 다시 한 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