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이영녀’, 90년 만의 만남…비극의 시대 “시대와 현실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

천한 곳에서 일궈낸 가장 고귀한 역사
“여성 해방은 이루어 졌는가”
"우리는 물질의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 구속되지는 않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2015-05-20     박봉민 기자

[KNS뉴스통신=박봉민 기자] 연극 ‘이영녀’는 비극의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낸 여인, 그녀가 겪어야 했던 시대와 현실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이다.

표현주의를 직접 작품으로 실험한 유일한 극작가이자 대중에게는 ‘사의 찬미’를 노래한 윤심덕의 남자로 유명한 김우진이 죽기 한 해 전인 1925년 발표한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장막극 ‘이영녀’가 국립극단에 의해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에는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담겨져 있다.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도시 1세대의 기수였던 목포. 작품에선 과도기적인 시대의 양면성이 이영녀의 삶과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을 지배한다.

주인공 이영녀는 밑바닥 사회마저 가부장적 가치에 지배를 받는 가운데 성의 권리와 인권에 대한 용감한 주장을 몸으로 실천해 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 ‘이영녀’에서는 희미하게나마 여성해방을 향한 운동의 싹을 발견할 수 있다는 평가다.

세 아이를 둔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남편이 가출하자 생계유지를 위해 창녀로 나선 ‘이영녀’.

작품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매춘을 소재로 당대 여성들이 처해있는 현실의 곤궁함과 그 대안에 대한 고민을 함께 드러내며 당대 여성들이 겪어야만 했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품이 쓰인 지 9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남성 중심적 사고가 지배하던 전근대적인 삶에서 얼마나 멀리 달아났는가. 여성 해방은 실로 얼마나 이루어 졌으며 오늘날 우리는 또 다시 물질의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 구속되지는 않았는가.”

1920년대와 2015년을 관통하는 자본주의의 비극을 통해 높은 이상을 가슴에 품고 비루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연극 ‘이영녀’의 연출을 맡은 연출가 박정희(극단 풍경 대표)는 이 작품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해방과 구속’을 주제로 정한 국립극단은 이번 작품을 통해 정치, 역사, 사회, 문화적으로 해방의 의미를 새롭게 규명해보면서 동시에 지금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천한 곳에서 일궈낸 가장 고귀한 역사의 이야기, 연극 ‘이영녀’는 5월 31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