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국 문화재 반환을 보면서

2011-03-01     AP통신

지난 주말 강원도 치악산 자락에 소재한 ‘고판화 박물관’에 들렀다. 한국, 중국, 일본, 몽골, 인도, 티베트, 네팔의 목판 원판, 고판화 작품, 서책 등 3,500여 유물 중, 가슴 아프게 보았던 유물은 철종 때 간행된 오륜행실도 판목이었다. 이 목판은 전체가 아니라 그 일부인 앞뒤 4면에 불과한데 그나마 일제강점기에 일본식 화로의 측면 장식용으로 이용되다가 최근 발견되어 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이 단적으로 드러난 유물을 보는 순간 착잡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누군가의 무덤을 지키던 문인석이 일본 가마쿠라의 어느 식당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목격했을 때처럼 말이다. 한편, 우리가 지키지 못해 빼앗긴 것은 우리도 책임이 있음을 느꼈다. 일제 강점기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고려청자 수집광으로 왕릉까지 파헤쳐 수천 점을? 수집해 갔다. 오구라라는 사업가는 국보급 불상 등 1,110점의 보물을 약탈해갔다. 그의 약탈 목록에는 술병, 항아리, 상감단지, 청동쌍용거울, 백자배꽃무늬향로, 청화백자접시, 벼루, 연꽃무늬 수막새, 채화접시 등 국보급 물건들이 수두룩하다. 지금은 돌아온 북간대첩비를 비롯하여 추사의 새한도 등 나라의 보물들이 회오리 광풍을 만난 듯 일본 땅으로 쓸려갔다. 얼마 전 전시를 마친 고려불화대전에서는 세계 곳곳에 흩어진 108점의 고려불화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었다. 르네상스 회화에 비견될 만한 동양미술의 백미로 꼽히는 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160여 점이 남아있는데, 한국의 10여 점에 반해 일본의 사찰과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 수는 130여 점에 달한다. 일제 강점기 초대 조선 총독이었던 테라우치 마시타케는 조선의 고문서 수천 점을 빼돌렸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이 일본과 중국의 고서를 합쳐 고향인 야마구치 시에 설립한 테라우치 문고는 1957년 야마구치 현립대학에 기증되었다. 그 중 일부를 1997년 되돌려 받았는데, <정축입학도첩>이나 추사 김정희의 <완당법첩조납인변서>처럼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자료도 많았다. 일본 궁내청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왕조의궤 등 150종 1,205책의 도서가 우리나라로 반환될 예정이란다. 임진왜란 때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이르는 동안 일본에 반출된 문화재의 수가 약 30만 종이 된다고 하니 이번에 반환되는 도서는 극히 작은 수에 불과하다. 작은 시작이지만 우리 모두가 꾸준히 노력한다면 지속적인 반환이 가능하리라 본다. 이번에 전시를 마치고 고이 돌려보낸 고려불화처럼 앞으로 더 많은 문화재를 교류 차원에서 볼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의식이 달라지고, 문화재 반환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우리의 것을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빼앗기고, 계승하지 않으면 남이 차지한다. 약탈된 것을 제 자리로 돌리려는 국민의식이 존재한다면, 경천사 10층 석탑의 반환 예처럼 세계적으로 여론을 만들어서라도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아 올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