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S뉴스통신=오성환 기자]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 이면에는 그 당연함을 지켜나가기 위한 많은 노력이 수반된다. 때로는 억울한 일이나 불합리한 일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우리의 당연한 일상을 지켜주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이들 중에는 축산 농가도 포함된다. 농가가 생산해 내는 다양한 고기류와 유제품 등은 우리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먹거리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당연함을 누리기까지 농가가 얼마나 많은 현실적 어려움과 싸우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런 농가의 아픔에 주목해 온 인물이 있다. 바로 한국소임상수의사회와 아시아동물의학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류일선 회장이다. 동물, 특히 가축들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친 그는 현재 다양한 환경분쟁으로 농가가 피해를 보는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아울러 산업동물임상경험을 바탕으로 대축산 농가 서비스를 활발히 전개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전문성은 봉사의 도구
가축계의 파수꾼으로 불리는 류 회장은 평생을 가축들의 친구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4년 경북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그는 경북 예천군청에서 축산물 검사원으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국립축산과학원에 들어가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의연구사 및 수의연구관으로서 대가축 및 축산농가와 협력해 왔다.
하지만 그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비전을 마음에 품게 된다. 오랜 기간 쌓아온 가축에 대한 전문성으로 이제는 우리나라 축산업과 산업동물 수의사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류 회장에게 있어 전문성이란, 돈을 벌기 위한 도구가 아닌 봉사와 헌신을 위한 발판을 의미했다. 그렇게 그는 2015년부터는 공직을 떠나 아시아동물의학연구소를 설립하고 현장에서 전천후로 활동을 펼쳤다. 연구소에서 펼치는 주요 사업은 가축질병진단, 동물용 의약품 효능시험연구, 가축질병제어·인공수정· 수정란 이식교육연구, 환경분쟁에 따른 가축피해 보상방안 연구 등이다.
“많은 축산 농가가 피해를 입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그 피해를 바로 알리고 제대로 보상을 받기 위해선 전문적인 지식과 오랜 경험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제가 가진 것들로라면 그분들을 도와줄 수 있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가축을 지키는 수의사 확보가 시급하다
코로나19라는 혼란의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의료진의 중요성을 다시금 체감했다. 가축들도 마찬가지다. 질병의 위험에서 피할 수 없는 만큼 시시때때로 의료진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들에게 다가갈 수의사들은 현저히 적다. 가축으로부터 많은 것을 공급받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심각하게 고려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동물병원 대부분이 반려동물 분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소, 돼지, 닭과 같은 경제동물을 취급하는 동물병원은 국내에 13%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개원 수의사들의 반려동물 선호도 현상과 농장 동물에 대한 기피 현상, 현장 수의사들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일부 오지에서는 소 사육농가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류 회장은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젊은 수의사들이 가축들의 병을 다루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것은 물론 왕진을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힘들다고 제왕절개와 같은 수술을 아예 포기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쇄반응으로 이 분야를 가르칠 수 있는 인력도 줄어들고 있다. 해당 강의는 물론, 대학교수들도 줄다 보니 기술을 아예 못 배우는 경우가 생긴다. 자문할 사람도 없어 류 회장이 커버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만큼 정부의 개입이 시급하다고 류 회장은 조언한다. 해당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례로 국가적으로 수의과대학 농장동물 전공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의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도 꾸준한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고 덧붙인다.
객관적 과거 자료 확보가 답이다
여전히 가축 농가들은 다양한 환경분쟁 속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피해를 입는 건 분명한 사실인데 정작 그 사실을 증명할 방도가 없다. 피해 사실을 담아 보고서 만드는 것부터가 농가 입장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보고서의 핵심은 객관성인데, 객관적 증거자료가 수집되려면 소견서, 검안서는 물론 사진자료도 충분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런 자료들 자체가 부실한 경우가 허다하다.
“농가에서 가축을 키울 때 정확한 일지를 작성해야 합니다. 암수별로 몇 마리인지, 질병 상황이 어떠한지를 비롯, 세세한 변화와 상황들을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그런 객관적 증거만 확보된다면 충분히 보상을 받습니다.”
류 회장은 객관적 과거 자료가 갖는 힘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다 분명하게 확인하곤 한다. 가령 공주시 한 목장에선 인근 골재생산업체로부터 나오는 소음과 분진으로 일일 원유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큰 피해를 입은 바 있다. 그러나 소음과 분진이 유량감소, 유질저하에 대한 원인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진단서를 갖추지 못해 보상을 받지 못했다. 다양한 사례들 속에서 누구보다 안타까움이 컸던 만큼 류 회장은 그들을 위한 돕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류 회장은 중간자의 역할에서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야말로 객관적인 근거와 객관적인 판단이 깃들 때 축산업자들의 미래도 밝아질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그는 그동안 많은 축산 현장을 누벼오면서 여러 의견을 제시했지만, 개선되거나 채택이 된 것은 아직 없어 안타깝다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더불어 이런 현실 속에서도 농가들이 끝까지 꿋꿋히 버텨나가길 격려한다.
“가축을 사육하는 많은 농가가 ‘내 농장은 내가 스스로 지킨다’는 일념을 갖길 당부드립니다. 저도 그 다짐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것입니다.”
오성환 기자 v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