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S뉴스통신=황자익 기자] 지난 16일 서울프레스센타에서 국제난민 종교자유 전문가세미나가 피랍탈북인권연대(도희윤 대표)의 주최로 중국내 종교탄압과 박해로 종교인들의 신앙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토론하였고, 토론회에 앞서 김영재 교수(단국대 초빙교수)의 사회로 난민동영상 시청(중국 종교 박해 실상 폭로),국민의례,내빈 소개를 하였다.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대표는 난민동영상(중국 종교 박해 실상 폭로)을 보니까 마음이 아프고 저 또한 이런 경험이 있던지라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하며 기독 신앙인들이 이렇게 고통 받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며 예전에 한국 기독교 지도자분들이 이런 사실을 말씀해 주실 때 이분들을 위해 무언가 도움을 드리고 대변해 줘야겠다고, 상의하고 협력하고 노력해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세미나 진행의 참석자로는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대표, 법무법인 수인 변명섭 변호사, 몽골 국립대학 국제관계연구소 전문가 김정민, 김정애 탈북작가, 중국 전 변호사 출신 린다왕(전능신교 난민 담당)이 발제를 시작하였다.
첫 번째 토론회 발제자로 법무법인 수인 변명섭 변호사는 현재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난민신청자들이 불인정 받은 문제를 법률적으로 필요한 여건, 박해, 진술성의 신빙성 등을 이야기하며 진술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고, 난민신청절차를 자세히 설명하며 종교라든지 특수 사회집단은 많은 고통을 받는데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발제자인 몽골국립대학 국제관계연구원 김정민 전문가는 종교탄압에 대해 알고 있고 그분들을 만나서 이야기 한적도 있으며 중국 주변에 있는 국가들은 중국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했다.
세 번째 발제자 전능하신하나님교회(전능신교) 난민 담당 전 변호사 출신의 린다 왕은 이번 국제난민 종교자유 전문가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어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며 “중국은 대단합니다‘ ”중국은 마수가 다 있습니다’ 라고 말에 이어 중국에서 종교탄압으로 인해 어머니가 구금당하고 중공의 핍박을 견디지 못해 아버지가 자살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고통의 시간을 겪으면서 중국 공산당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중국은 형식적으로는 신앙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치안유지를 위한다는 구실로 종교를 탄압하고 있다.”면서 “중국 공산당은 기독교를 사이비 종교로 지목하고 선교사 추방, 교인 체포·감금, 신도 살해 등 무자비한 탄압을 일삼고 있다”고 증언했다.
네 번째 발제자 김정애 탈북 작가는 북한에서의 힘든 생활을 이야기하며 북한독재체제에 대한 실상을 실토하며 탈북 할 수 밖에 없었던 심정을 토로했다.
토론회 발제에 이어 2부 증언에는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연들이 발표되었는데 중국에서 종교 탄압과 핍박으로 한국으로 망명해온 장복씨의 증언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집중하며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시간들이 되었다. 마지막 증언자 장복씨는 모 방송국 제보자 라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던 적이 있는 내용을 토대로 발표하였다.
"저는 한국에까지 와서도 중국 정부의 검은 마수가 저에게 뻗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의 경험담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라고 말문을 열었다. 저는 1998년부터 부모를 따라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사회에 발을 내딛으며 방황하며 고단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타락하고 악한 세상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심령에 공허감을 느끼게 되고, 인생의 갈림길에서 헤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5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면서 재림예수심을 확신하게 되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서 진정한 사람의 모습, 진정한 인생길의 방향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제가 믿는 것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날도 잠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2010년 아내는 웹서핑을 하다 중공 정부의 흑색선전을 보고 사실로 믿으며, 저의 신앙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집안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특히 2014년, 중공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실추시키기 위해 조작한 ‘5.28맥도날드 살인사건’이 터지면서부터 그 내용을 철석같이 믿은 아내는 저의 신앙 생활을 점점 더 심하게 반대하며 말씀도 보지 못하게 하고, 예배도 참석하지 못하게 핍박했습니다. 예배시간에도 휴대폰을 꺼놓지 못하게 하면서 24시간 켜놓으라며 저를 살폈고, 간혹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날은 꼭 다툼으로 번졌습니다. 정말 중공 공산당의 흑색선전에 빠져 성격 장애까지 되는 아내를 보면서 너무 슬프고 가슴이 아팠으며, 저로서는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2015년 구정 때, 제가 있던 지역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하나 둘 잡히기 시작했고, 저 또한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악상황 처해 저는 2살난 아들과 이른이 넘으신 부모님을 두고 중국 정부를 피해 천신만고 끝에 대한민국까지 왔습니다. 한국에 온 이상 신앙 생활 만큼은 공포 없이 편하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중공의 박해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2016년 5월 18일, 아내는 저의 둘째 누나와 아들을 데리고 다시 제주도로 왔다며 연락을 했습니다. 22일 저녁, 오랜 만에 가족들과 상봉했고, 설레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박해로 어린 아들까지 이별의 아픔을 감당하고 있는 상황을 보며 가슴이 미어져 아들을 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솔직히, 중공이 박해만 아니였으면 어느 아빠가 어린 아들에게 아빠의 사랑을 듬뿍 채워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중공의 박해가 아니었다면 제가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며 지낼 이유가 또 뭐가 있겠습니까? 멀쩡했던 단란한 가정은 중공의 거짓말에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그게 다 중공이 준 피해가 아니겠습니까? 기쁨도 잠시, 오랜만에 이뤄진 가족 상봉도 중국 공산당의 음모속에 이뤄진 것인 줄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5월 23일, 오후 5시 쯤, 잠깐 산책을 하고 호텔로 들어갔습니다. 방문을 여는 순간 큰 키에 낯선 남자가 갑자기 화장실로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들키자 남자도 태연하게 나와 자리에 앉았지만 저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누구냐고 물었고 남자는 스스로 샤오한이라고 부르라며 아내의 직장 동료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고 남자는 인사도 없이 방에서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보니 누군가 제 휴대폰을 만진 흔적을 발견했고, 여권도 사라졌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여권을 누가 가져 갔냐고 묻자 아내는 제가 도망간 줄 알고 신고했는데, 경찰이 와서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너무 수상했습니다. 저는 짐도 여권,휴대폰까지 다 그대로 호텔에 두고 나갔으니 도망갈 사람으로 보일리 없었습니다.
아내는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심기가 매우 불편해 졌고, 아내는 바로 미안하다며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카톡 위챗으로 중국에 있는 정씨 성을 가진 공안 경찰관에게 연락을 해주었습니다. 보이스톡 너머에 남자는 자신을 산시성(山西省)에 있는 공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동방번개)를 상대로 2천 건이 넘는 사례를 담당한 이력이 있다며 저를 안심시키는 등, 귀국하라고 다양한 방식으로 설득했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30분쯤 지나 샤오한이라는 낯선 남자가 다시 방을 찾아왔습니다. 그 남자는 저에게 정 경찰관하고 얘기는 잘됐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바로 아는 사람이냐고 되물었습니다. 남자는 얼결에 자신의 스승이라고 했고, 다시 이런 저런 방식으로 교회 정보를 캐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쇼한이라는 낯선 남자가 중국 공안의 스파이라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날 저녁, 아내는 잠깐 외출하고 돌아와 중국으로 같이 돌아가야 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지금 제 처지는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고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아내와 아이까지 같이 한국에 남기를 바란다는 의사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아내는’안 돼! 당신은 반드시 나랑 돌아 가야 해!’라며 고집을 피웠습니다. 결국, 지금은 중국에 갈 생각이 없는 제 의사를 확인한 그들은 저의 신용카드, 현금 70만원이 든 지갑을 빼앗고, 제가 잠든 사이에 휴대폰을 다 훔쳐갔습니다. 다음날 24일 오전, 아내는 재차 같이 귀국해야 한다면서 자살로 위협까지 했고, 저는 휴대폰 하나만 가지고 우여곡절 끝에 호텔을 겨우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15분 정도 지나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권을 돌려달라는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누나가 휴대폰을 확 채갔습니다. 저는 재빨리 휴대폰을 빼앗아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앞에는 아내와 샤오한이라는 남자가 서있었고, 세 사람이 저를 포위했습니다. 저는 바로 사람이 많은 쪽으로 달렸고, 뒤에서 샤오한이라는 남자가 ‘거기서 거기 서! 장복 너 거기 서!”라며 쫓아 왔습니다. 저는 있는 힘을 다해 4시간 동안 골목이 보이는데로 뛰어다녔습니다. 그 순간에 있었던 공포심은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그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6년 8월경, 중공의 사주를 받은 아내는 다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아내가 공항을 내리자마자 마중나온 사람들이 있었고, 아내는 저의 거처를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저를 찾아오지 않고 ‘남편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기자회견부터 열었습니다. 그리고 신분이 불투명한 사람들과 교회를 찾아와 소란을 피웠고, 방송으로 제가 교회의 협박받아 귀국하지 못한다는 거짓말을 퍼뜨리며 저를 강제로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또한 교회의 명의를 실추시키는 역할까지도 했습니다. 저의 아내는 매우 평범한 가정 주부입니다. 뒤에서 중공이 계획하지 않고 사주하지 않았으면 아내는 절대로 혼자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아내가 단지 중공에게 도구로 사용 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저의 산앙 자유의 권리를 빼앗고 저의 가정을 파탄시켰습니다. 그러면서도 적반하장으로 제 아내의 눈물과 아이의 울음을 이용해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시키고 여론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중상모략했습니다. 이런 사실에서 중공의 음험한 속셈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얼마전, 5명의 탈북자가 중공에게 잡혀 강제 송환이란 위기에 놓여 음독 자살 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기사를 보면서 분통이 터지기도 하고 자유의 삶을 지향했던 5명의 탈북자의 심정이 공감되면서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에 억류되어 있고,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여전히 중국 정부의 탄압으로 고통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정의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탈북자들과 중국 정부의 박해를 받고 있는 크리스천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주시고,탈북자와 크리스천들의 인권은 유린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실태를 폭로하여 규탄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며 마음 깊은 고백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국경없는 인권협회 대표 윌리 포트레 목사는 이날 한국정부에 대해 종교탄압을 피해 한국에 체류중인 중국인 26명과 체류기간 연장 불허를 통보받은 15명,외국인등록증을 회수당한 41명 등에 대해 정치적 망명을 허용해 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공개했다.
황자익 기자 1004jayaa@hanmail.net